2008년 5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게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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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기억을 형상화하고 기억되게 하는 것이 나의 몫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궁금해진다.
저기 저렇게 작은 초, 그것에 자신의 희망을 담았던 어린 소년에게 2008년 5월은 어떻게 기억될런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재현해낼 것인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은 어떤 기억인지?...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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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졸업논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12월 7일 대학원 합격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2월 10일, 국제품 합격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2월 26일, 정보품 합격증을 등록했다...

이제 졸업까지 단 하나의 과정이 남았다.
2007년 2학기 학점 확인.
현재까지 취득학점 115학점에 총평점 461.5, 평균평점은 4.08....(2학점은 패스패일이라서 계산서 제외)
총 취득학점 130학점일때 조기졸업에 요구되는 평균평점은 4...
총평점 요구량은 512... 50.5의 평점이 요구된다. 이번학기 요구 평균평점은 3.37
당연히 받겠지만...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이거 살짝 부담된다 ㅡ.ㅡ;;
이번학기 중간때 너무 놀았고.. 기말때 한 시험을 망친 관계로 ㅜ.ㅠ;;
모두 b+에 하나 b면, 총점 0.5점 부족으로 실패한다는;;; 아 긴장되라;;;
실패하면 무슨 망신이야.ㅋㅋ 대학원도 합격하고선 ^^;;;


졸업논문도 통과되었다

제목은 '근대소설을 통한 역사 읽기 -염상섭의 <만세전>을 통한 1922년 신석현 사건과 조선인 노동자 송출 문제에 다가서기-'라는 긴 제목으로 나는 글을 지었다.

이 글의 기본 내용은 2006년 2학기에 임경석 선생님이 하셨던 '한국 근대의 사회와 문화' 수업에서 작성했던 사료노트에서 비롯되었다. 난 이때 2조 염상섭 조에 소속되어 염상섭 소설을 읽고 그 안에서 역사상을 뽑아내는 활동을 했었다.
사료노트란 것은 완성된 하나의 글이 아니라 역사서를 쓰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마친 나에게 이렇게 논문이란 결과물로 그 내용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번 논문은 의미가 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하다. 8쪽의 사료노트를 20쪽으로 늘리는데만 중점을 뒀다고 할 정도로 매끄럽지 못한 글 쓰기를 보인 것 같다. 거기다 불과 이틀만에 쓴 글이란 점도 참 아쉽기만 하다.
미리미리 준비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나중에 염상섭의 소설과 기타 여러 소설들을 엮어 역사적으로 읽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시키고, 그것을 역사서로 내놓는 것이 내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기의 형식을 띌수도 있지만 문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생각되고... 또한 내가 생각하는 역사인식을 난 거기에 담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역사인식이란 것은 아직은 투박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인식이 담겨질지는 장담은 못 하겠지만...

그러한 내 목표의 첫 발자국을 이 곳에 남겨둔다.

이제... 졸업,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다.

ps) 성적은 무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엄청 잘 나왔다...(이놈의 엄살쟁이;;;)ㅋ
     졸업은 하나 이제 다음 압박은 오백이 넘는 등록금 ㅜ.ㅠ;;;ㅋ

ps2)... 졸업논문에 비번을 달았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리플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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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진학을 결심해온 것은 오래 전부터...
(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물론 사학과도 마찬가지 때부터;;;)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서 사학과라는 과를 배정받고 여러 공부를 해보면서
사학이라는 것이 내가 단순히 생각하는 것 이상의 지평을 가지고 있음을 배워나갔다.

미시사라는 새로운 조류(포스트모더니즘적)라던가...
우리 한국사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여러 논쟁거리들...
(삼한일통론vs남북국시대론, 식민지근대화론vs수탈론 등등)...
그리고 고고학의 발굴이라는 사회...

이러한 다양한 측면들에 난 곁다리를 살짝살짝 담궈볼 기회를 얻어왔다.

그리고 점차 대학원을 간다면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역사학은 정치적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위한 글쓰기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위한 글쓰기를 애초부터 적극적으로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러한 정치적 활동이 싫다면
일반적인 역사학(문헌사학)과는 다른 분야를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역후 줄곧 생각했던 것은 고고학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나한테 안 맞는다는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분명 나를 도와주는 여러 분들은 너무나도 고맙웠다.
하지만 내 인생 나의 길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뜻에 맡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심에 도달했다.

도망치려고 했던 정치적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분명 마음 내키기만 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리고 분명 내가 원하는 대로 읽히지 않는 결과를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내가 가진 생각과 역사학 속에서 그러한 가치들을 발견, 설명하고 싶다.

현대인이 과거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난 고고학이라면 다를 것이라고 믿었었다.
고대인들이 남긴 물건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이니까...
하지만 발굴이라는 작업 자체가 과거의 파괴이자... 엄청난 왜곡이란 사실을 발굴을 경험해고나서야 알 수 있었다...
마찬가지구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이 부분에서 내 뜻이 크게 변화한 거 같다.

객관적 진실을 탐구할 수 없다면
내 뜻을 담아내는 글쓰기를 추구하자....
그래서 한국근대사라는 시대사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아직 무엇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싶은지...
정확히 확정치는 못 했지만...
방대한 사료의 바다에서 익사할 정도로 헤엄쳐야지...
하지만 그 헤엄을 치는 과정에서
결코 인간이라는 역사의 주체를 망각하지 말아야지.
란 생각을 한다.

왠지 횡설수설한 글이지만 이정도에서 마무리 할련다...
한국근대사란 영역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어떤 연구 성과들에 대해서 검토해보고 싶은지는 나중에 글을 쓰도록 하겠다...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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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전에 그렇게도 생각하던 고구려사에 대한 내 인식의 총 정리판이다. 물론 이보다도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글 자체는 공신력을 얻기 위해 여러 학자들의 인식과 내 인식의 일치화를 추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전에 내 미흡한 글에서는 고구려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들의 것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누구의 것인가를 밝히는게 중요치 않다고 본다.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주장이 가지고 있는 목적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분쟁' 속의 국가들은 확연히 목적의식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을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극복가능한가? 지금까지 쓰여진 역사를 민족적, 국가적 역사학이라고 한다면 탈국가, 탈민족하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탈국가, 탈민족적이란 연구들의 실상은 여러개의 민족, 국가를 통합하여 연구하는 이전의 일국사가 이국사, 삼국사가 된 양상일 뿐이었다. 여전히 국가적, 민족적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국사, 삼국사로의 확장 안에서는 여전히 어떠한 국가가 그 내용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문제점 또한 존재한다. 특히 동아시아 삼국, 한국, 일본, 중국사를 함께 이야기한다고 할때 우리의 서술에서는 당연히 한국이 중심이 되고, 일본의 입장에서 일본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중심이 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보다 다양한 역사상을 보여주겠다던 기존 '동아시아사'의 입장과는 달리, 제한된, 그리고 주변화된 '동아시아사'의 서술을 발견하게 된다.


 답은... 그렇게 쉽게 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서술이란 것은 불가능하다. 끝내 역사가의 서술에서는 무언가를 배제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과정에서 이야기해야하는 것은 무엇을 배제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한 서술인가?라는 측면인 것이다.


 아직 나의 논리 또한 구체적인 답과는 거리가 먼 위치에서 뱅뱅 돌고 있다는 생각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언젠가 나만의 답으로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 또한 모두의 답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역사가가 된다면 나 나름의 방식으로 과거를 구성하고, 어떤 사실을 배제하고, 누군가를 위한 역사를 서술할 것이다.

 역사가의 글쓰기는 매우 정치적인 활동이다. 난 그러한 정치적 활동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역사분쟁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던 와중에 나 자신이 도달한 나 자신의 역사관에 대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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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0일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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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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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학교에 와서
이제는 끝난 엠비씨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고 있다.

이 프로는 우리 현대사의 왜곡된 면들을 파헤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노력, 즉 이제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시도한 프로다.
당시 큰 방향을 일으키고, 사회 보수, 집권 세력들에 의해 크게 공격을 받기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1편 제주 4.3
그 2편 동백림사건
그 3편 조봉암과 진보당
까지를 보면서...
아직까지도 바로잡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큰 아쉬움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되잡지 못한 우리의 현대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들에 의한 정치지배(?) 주도가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시한다면...
아직까지도 우리가 진정한 민주화, 평등화를 통한 자유민주주의사회를 이루는 길은 멀었다는 생각만이 든다.

그리고...
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가?...
왜 이제야 말할 수 있는가...
아직도 못 말할 것은 또 무엇인가?...

역사를 배우는 역사학도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그 시간의 역사를 배워나가며
너무나도 좌절과 분노에 휩싸인다.
무엇으로 이를 극복하고 역사학도로써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난 정치적 인간과는 거리가 먼..(즉 별로 인기 없는, 재미없는)
그런 사람이지만...
순간순간 나라는 모자란 사람이라도 정치판에 뛰어들어 정치를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진정 제대로된 역사를 배우고,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이야말로
제대로된 정치를 실현하고자 보다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휴우...
무언가 제대로된 사회가 됐으면...
이제는 이제서야 말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 안 일어났으면.
아직도 못 말하고 있는 것들이 말해질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며..

이번 방학...
아직도 많이 남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기 위해 학교를 매일같이 출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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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24일.

참 개인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썼던 글이란 사실이 우습기만 하다.
입대가 불과 3개월 앞...
그리고 좋아하던 애와는 대판 싸우고 소원해진 때...
그때 난 학교에 가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에
나 스스로 피식. 웃을 뿐이다. ^^;

끝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 보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 프로는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바를 더 생각하게 해주었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 앞에서 느끼는 분노.
이것은 내가 역사학을 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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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후에 연구를 한다면 무엇을 중심으로 해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임진왜란을 둘러싼 민중사의 재구성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기본으로 하겠고 그 전후의 상황 또한 서술해야겠지.

그리고 의병활동에 대해서 본질적인 측면을 탐구해보고 싶다.
솔직히 왕이 피난갈때 돌 던지고, 왕자들을 잡아다 일본군에 넘겼던 그들이 국가를, 왕을 위해서 의병활동을 시작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들은 몇차례의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 않은가?

또한 일본군 점령지의 민들은 강요된 것이기는 했겠지만 상당수 일본군에 협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칼의노래에서나왔다.ㅋㅋ)]
이러한 일본군 점령지의 민들의 생활도 다시금 찾아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일본 사료를 상당히 많이 참고해야할듯... 일본어 모르는데 ㅜ.ㅠ;;)

그리고 역시 앞에서 말한 반란들, 왕조에 대한 저항을 살피는 것은 기본이겠지.
특히 이몽학의 난. 왕조를 뒤엎으려고 했던 이 난의 성격과 거기에 참여한 규모로 추정해보는 당시 민들의 왕조에 대한 관념을 추적해보는 것도 중요할 듯 하다.

한편 우리나라에 구원을 온 명나라가 저질렀던 만행들.
후에 재조지은이라고 명에게 감사했던 지배계급의 의식과는 상반되는 민들의 의식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러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개설서,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이라곤 이순신을 비롯한 장군들과 의병들의 활약, 그것으로 일본의 침략을 잘 극복해냈다는 단순한 서술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사회 실상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후에 찾아온 전후복구사업도 민들을 힘들게만 했으니까.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약간이나마 반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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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4일

2003년 10월에서 11월은 정말 역사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시절 같다.
이랬던 나의 과거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새삼스럽고 우습고.. 그러면서도 뿌듯하다.

이 글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착안한 내용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해보고 싶었다.
호국정신을 강조하는 임진왜란사...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복잡한 이해관계와 사람들의 삶이 표현되었던 공간이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는 그러한 모습을 구현하는데 분명 사료적 한계가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꼭 해보고 싶다....

내가 목표하는 민중사의 구현의 한 프로젝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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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대개 애매한 문제다.
일단 현재 영토상으로는 그 영토의 대부분이 중국에 속해있고
민족상으로 우리측 주장에는 한민족이라고
중국측에서는 한족이라고, 혹은 중국에 대거 흡수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논쟁 자체는 결론 내리기도 힘들고
논쟁 자체보다도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리, 논쟁의 의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음...
중국에서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일단 중국 내 소수민족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 동북부 지역의 조선족을 중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도다.
중국 동북부에 주로 위치했었던 고구려를 중국의 변경(지방)국가로 취급함으로써 이들의 후예인 조선족도 자신들의 국가로 통합하는거다.

한편 우리는.. 뭐...
고구려의 역사를 장악함으로써 대륙으로 뻗쳐나가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있고
그리고 간도, 백두산 영토 문제, 그리고 조선족을 교포로 볼 것인가의 문제랑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간 가장 쉽게 말하자면 양쪽다 영토문제때문에 싸운다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간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한국....
ㅡ.ㅡ

영토란 것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고 국가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건만....
왜 우리는 영토는 고정적인 것이고, 국가는 영원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건지...
난 내일이라도 대한민국이 망해도..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할까나...

끝내 이러한 논쟁은 지배자(존재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존재하는)들에 의해 벌여지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크게 상관없는 논쟁이란 것이지.
그런데도 이에 대해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학계를 보자면 무엇을 위한 연구인지...
자신들은 정권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고구려사가 우리, 현재 대한민국의 전시대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떠한 근거로?
민족적 근거? 한민족이라고? 우리가 오직 하나의 민족으로만 구성되었는가?
역사시대에 들어와서 특별히 딴 민족의 유입이 없었을 뿐 그 이전 민족의 구성이 어떤 양상이었는지는 확인 불가능한 것임에도 우리는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할 것인가?

고구려사를 우리 역사로, 그리고 발해사를 우리 역사로 보자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제기된 것이니 그 역사적 연원은 확인되는 바이나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역시 고구려사는 고구려의 것이란 사실이다.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에고고... 횡설수설 하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쓰겠습니다.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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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5일

동북공정이 막 시작되어 시끌벅적하던 그 시기에 썼던 글...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쓰겠다는 다짐은 2006년 역사학 관련 수업에서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루었다.
물론 이때와 마찬가지로 답아닌 답으로 마무리 짓고 있지만...
그 큰 틀은 이미 이때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Posted by 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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